해외여행/포르투갈(2024)

[포르투갈 여행] Chapter 7-3 : 카스카이스 3부 - 카스카이스의 역사

超지구여행자 2024. 12. 22.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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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스카이스에서의 마지막 순간.

이제 카스카이스에서의 일정도 마지막으로 접어들었다.

카스카이스 만으로 돌아와서 10월 5일 광장( Praça 5 de Outubro)에 왔다.

 

참고로 10월 5일 광장은 포르투갈의 다른 도시 (포르투 등)에도 있으며,

1910년 10월 5일에 포르투갈 공화국이 설립된 역사적인 날이라 광장 이름에 쓰이기도 한다.

◆ 마을 박물관 (Museu da Vila)

10월 5일 광장에는 카스카이스 시청이 있는데, 그 옆에는 마을 박물관이 있다. (입장료 무료)

 

박물관에 막 들어가서 관람을 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안내 데스크쪽 직원 분들이 환호성 및 비명(?!?!)을 지르기에

물어보니 마침 직원 분들이 한국 드라마를 보고 있었고 "별에서 온 그대"를 보여 주었다.

그러다가 한국인인 내가 들어온 우연(?)에 놀랐고, 뜨거운 환대를 받은 셈이 되었다 ㅋㅋ

이 마을 박물관은 카스카이스의 탄생과 오늘날의 카스카이스의 역사, 생활상을 다룬다.

 

이전 포스팅을 보셨다면 사진으로 느끼셨을 건데.

카스카이스는 신트라(Sintra), 오에이라스(Oeiras), 대서양 사이에 위치한

작은 언덕과 계곡이 산비탈에서 해안까지 이어지는 지역이다.

 

박물관 설명에 따르면, 카스카이스라는 이름의 기원은 명확하지 않으나,

"cascal"이라는 명사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작은 어촌 마을이었던 카스카이스에 석회암, 조개, 갑각류가 있음을 연결한 걸로 보인다)

 

위 사진 왼쪽에는 카스카이스의 문장이 보이는데,

성곽과 함께 상곽 아래에는 그물이 함께 있어 어촌이었음을 반영하고 있다.

카스카이스 문장에 대한 설명들

지리적 위치, 온화한 기후 덕분에 이곳에는 선사시대부터 인류가 거주해 왔다.

사냥과 채집을 하던 사람들은 내륙을 거점으로 해안을 왕래하면서 살아온 곳으로 보이며

신석기 시대에 농경 공동체가 등장하면서 농업과 목축으로 안정화되었으며

이후 어업과 소규모 무역을 통해 마을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조금씩 발전해 가는 카스카이스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

하지만 항상 평화로운 시기만은 없는 법이다.

1580년에는 스페인 군대의 침략을 받아 약탈을 당했던 아픈 역사가 있었으며

 

1755년에는 리스본 대지진의 영향을 피하지 못했다.

지진과 더불어 쓰나미가 발생하여 카스카이스를 덮쳤으며,

이로 인해 많은 건축물들이 파괴되었고 카스카이스 또한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지진 이후 재건된 카스카이스

[당시 농경 및 주민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물건들] 

 

지진 이후 카스카이스는 회복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렸는데

카스카이스가 기사회생을 하게 만들어 준 것은 그 특유의 해변과 자연환경이었다.

19세기가 되어 리스본과 신트라, 오에이라스를 연결하기 위한 도로, 철도의 개통으로 인해

사람들은 카스카이스의 아름다운 해변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이후 포르투갈 왕실의 여름 휴양지로, 많은 사람들이 휴양을 위해 찾는 인기 도시가 되었다.

이로 인해 카스카이스의 인구도 증가하고 도시에는 활력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카스카이스는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휴양지로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다.

옛 카스카이스 시청사의 모습. 확장되지 이전이지만 지금의 마을 박물관의 흔적이 남아있다.

카스카이스에서의 고요하고 평화로운 하루. 

마지막 일정으로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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