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멕시코(2022) - 완결

[멕시코 여행] Chapter 2-2 : 멕시코 시티 - 차풀테펙 성 / 국립역사박물관

超지구여행자 2022. 10. 10. 13:32

◆ 차풀테펙 성 - 국립역사박물관

이제 성 중앙에 있는 국립역사박물관으로 들어가 본다.

이 건물은 예전에 군사대학으로 사용되었다.

국립역사박물관에 대한 평을 앞서 해보자면, 내용의 충실도는 훌륭하다.

1500년대부터 20세기까지의 멕시코 역사를 시대순으로 구분하여 전시해 놓았다.

 

가장 큰 단점이 있는데, 영어로 된 설명이 없다. 설명은 스페인어 뿐이다.

 

스페인어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관람에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큰 단점이 된다. 물론 중간중간 번역기를 사용하거나, 인터넷 검색을 통해 확인할 수 있겠지만

관람할 유물들과 그림이 많기 때문에 그러기에는 너무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궁전에는 영어 설명이 병기되어 있었는데, 정작 더 중요한 의미가 부여될 역사박물관에

영어 설명이 병기되어 있지 않다는게 의아할 따름이다. 

 

이 포스팅에서는 유물의 설명은 가급적 생략하고, 역사의 흐름을 바탕으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유럽인들이 바다로 나가 세상을 발견한 시대, 흔히 말하는 대항해시대 이전,

멕시코 지역에는 "메소아메리카 문명" 이라는 고유의 문화권이 있었다.

 

가장 유명하고 친근한 문명으로는 마야, 아즈텍 제국들이 있을 것이다.

그 외 여러 문명들이 멕시코를 비롯한 중앙 아메리카 지역에 분포하며 문명을 만들어 나갔다.

서로 고립되었던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은 대항해시대를 기점으로 운명이 바뀌게 된다.

유럽 국가 중 식민지 개척 야욕을 강하게 가지고 있던 나라 중 하나는 스페인이었다.

 

스페인은 많은 원정대를 보내어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 대부분에 큰 영향을 미쳤다.

현재까지 볼 수 있는 가장 큰 영향은 멕시코를 비롯한 남미 국가의 언어가 스페인어라는 것.

그리고 대부분의 국가의 종교는 기독교가 되었다. 

위 그림은 "두 문화의 융합"  la “Fusión de dos culturas” 이라는 작품이다.

작가 - Jorge González Camarena

 

멕시코를 상징하는 독수리 전사와 스페인 병사간의 서로 죽이는 혈투.

칼과 피가 교차하며 불타며, 이 두 문명은 결합되었다.

 

메소아메리카 문명에서 당시 최강의 위세를 가지고 있던 아즈텍은 멸망하였고

아즈텍 제국의 수도인 테노치티틀란의 자리에는 멕시코 시티가 들어섰다.

위 작품은 멕시코 국기의 상징이다.

독수리가 뱀을 물고 선인장 위에 앉아있는 모습이다.

 

아즈텍 제국의 수도인 테노치티틀란과 관계된 전설이기도 한데, 

독수리가 선인장 위에 앉아있는 곳에서 나라가 세워질 거라는 전설이 있었다고 한다.

아즈텍은 멸망했지만 위 그림처럼 일부는 기독교로 개종하여 스페인에 복속되기도 했다.

스페인은 토착신앙을 거의 말살하다시피 했다.

토착 신앙은 사람들을 모으는 구심점이자 저항의 원동력이 되기 때문에 철저하게 파괴했다.

 

멕시코의 도시 중 푸에블라(Puebla) 라는 도시가 있는데, 그 도시에 있는 교회는 피라미드 위에 세워져 있다.

피라미드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신전이었는데, 그 위에 교회를 세웠다는 것은...

멕시코 시티 건설의 계획도와 멕시코 시티를 묘사한 병풍이다.

지금은 더 복잡하지만, 이 때에도 꽤 도시의 밀도가 꽤 빡빡해 보인다.

예전 멕시코의 영토를 나타낸 그림이다.

특이점이 있다면 캘리포니아와 텍사스도 멕시코의 영토로 되어 있는데, 그게 맞다.

 

미국과 멕시코 전쟁에서 멕시코가 패해서 빼앗긴 (과정이 어찌 되었든) 땅이기 때문이다.

위 그림은 인종별로 16개의 계층을 묘사해 놓은 그림이다.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뭔가 점점 삶이 소박해지고 끝에는 급기야 얻어맞고 있다(...) 

 

멕시코로 이주한 스페인 사람들과 혼혈이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 밖에 없었고

그 와중에도 다양한 민족들과 결합되며 계층화되는 참 안타까운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인데, 백인 혈통의 멕시코인이 은근히 우대받는다던지 하는게 존재한다.

현지 친구도 피부 색 때문에 여러 차별을 겪었다고 한다. (친구의 색은 갈색에 가깝다)

같은 멕시코인임에도 불구하고 피부색으로 인한 차별이 음성적으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설마 하였지만, 나중에 나도 이걸 직접 보고 겪었기 때문에, 그건 나중에 따로 이야기하겠다.

1800년대에 들어서, 멕시코는 스페인에 대해 독립을 꾀하게 된다.

 

장기간의 지배로 인한 멕시코 사람들의 불만은 점차 커져가고 있었다.

스페인 사람들의 후손으로 멕시코에 살면서 토착 세력화된 자들도 스페인의 간섭에 반발하기 시작했다.

위  사람은 최초의 독립운동을 일으킨 미겔 이달고 (Miguel Hidalgo y Costilla) 신부이다.

독립 의지가 강했던 그는 군대를 조직하여 무장봉기를 일으켰으나, 최후에는 실패하여 처형당했다. 

가로 15.69 미터의 압도적인 크기가 인상적인 이 그림은 "독립의 제단" 이라는 작품이다.

El Retablo de la Independencia - 작가 : Juan O'Gorman

 

원래 이 작품은 디에고 리베라 (Diego Rivera)가 그릴 예정이었는데, 리베라의 사망으로 인해

환 오그로만이 이어서 맡게 되었다고 한다.

복잡해 보이지만 왼쪽부터 보면 독립전쟁의 시대를 크게 4가지로 나누어 그려 놓았다.

 

오른쪽 하단에 봉화를 들고 있고 있는 미겔 이달고 신부가 보인다.

많은 사람들의 숭고한 희생으로 멕시코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했다.

그러나 갓 독립한 멕시코가 안정되기 까지는 많은 혼란기를 거쳤다.

 

헌법의 제정되고 여러번 개정되었다.

많은 대통령들이 임기를 거쳐갔다. 몇몇은 권력에 심취해 독재와 전횡을 일삼아 쫓겨나기도 했다. 

몇몇은 쿠데타 및 부하의 배신으로 사망하는 비극을 겪었다. 너무나도 혼란스러운 나날이었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제 29대 대통령 포르피리오 디아스였다.

그는 프랑스막시밀리아노 1세를 내세운 멕시코 2제국에 맞서 싸운 영웅이었다.

 

하지만 그는 권력의 맛을 보고 헌법을 여러번 개정하여 35여년간 독재를 일삼았다.

이로 인해 멕시코 혁명이 일어났고, 그는 멕시코에서 추방당해 프랑스 파리에서 말년을 보냈다.

프랑스와 싸운 인물이 프랑스에서 생을 마감했다는게 참 아이러니하다.

디아스의 독재 시기를 묘사한 그림이다.

El Feudalismo Porfirista - 작가 : Juan O'Gorman

 

왼쪽에는 마치 왕처럼 군림하는 포르피리오 디아스가 보이고,

오른쪽에는 대농장 지주에 의해 고통받은 농민과 노동자들이 묘사되어 있다.

디아스는 농업을 대농장화 시켜 경제력을 높이는 정책을 펼쳤는데,

그 결과 영세 규모의 농민들은 큰 피해를 입었다.

위 그림은 제37대 대통령에 오른 프란시스코 마데로 (Francisco Madero)의 혁명을 묘사했다.

Retablo de la Revolución - 작가 : Juan O'Gorman

 

마데로는 디아스의 독재에 대항하여 혁명을 일으키고 대통령이 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가 믿었던 장군 빅토리아노 우에르타 (Victoriano Huerta) 에게 배신당해 살해당했다.

우레르타는 배신의 댓가로 대통령에 오를 수 있었으나 그 또한 혁명으로 인해 쫓겨났다.

 

위 예시는 혼란스러운 정국의 일부일 뿐이다.

이제 1층의 관람을 마치고 2층으로 올라가 본다.

멕시코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점으로 벽화들이 있다.

매우 큰 크기를 활용하여 강렬한 이미지와 표현으로 눈을 사로잡는다.

2층에는 화려함이 절정에 달한 분수대와 문과...

스페인에서 파견된 총독들의 초상화가 전시되어 있다. 많이도 왔었구나.

 

이렇게 해서 차풀테팩 성의 관람이 끝이 났다.

정말 볼게 많았다. 여기만 봐도 하루가 꼬박 걸릴 정도다.

너무 피곤했기 때문에 이 날은 더 이상 다른 곳에 가는 건 포기했다.

 

우리나라 못지 않게 격동적인 역사를 가진 멕시코의 역사를 볼 수 있어 좋았다.

다만, 영어로 된 설명을 좀 병기해주면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이해하는데 더 좋지 않을까?